
2020 연성 연말정산
상반기
아이는 살면서 당황했던 적이 많지 않았다. 특히 어렸을 적, 아이는
영민했다. 아니, 어쩌면 굳이 영민하지 않았다 해도 눈치라든가,
상황파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면,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좋은 일을 알게 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아이는 다양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외갓댁 식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 피를
받았음에도 아무것도 못했다는 자신의 어머니도. 어머니께서는 아주아주 늦게야, 마법도 아닌 그저 좋은 촉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점쟁이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운명을 공부하신 셈이다. 태어난 때로, 쌀로, 카드로, 산통으로 알아보는 온갖 예측을 공부했다. 아이는 그 영향을 받았다. 비록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이도 잔재주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 아이는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그럼 엄마는 마법 없이도
미래를 아는 거예요?
바다에 가지 못한 날에는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에서 봤던 모든 풍경을 그림으로 남겨가며 기억해왔다. 그러나 짧더라도, 세월은 세월.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바다에서 보았던 풍경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슬픈 일이던지. 온 몸을 감싸안아 나를
어루만지는 파도의 감각을 느끼며 감상하는 바다의 시야가 얼마나
아름다웠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이모의 수경을 몰래 빼돌렸다. 이모가 모를 만한 바다에
나가서, 첨벙. 바다를 보았다. 바다에 안겨, 바다를 보았다.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반사되는 빛을 보았다.
그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앞으로도 보지 못할 테다. 불규칙적으로 반짝이는 윤슬과, 먹먹한 바다의 소리, 몽환적인 빛의 반사, 그리고… 온통 푸르게 맑은 물, 바다, 물. 차라리 이 품에 안긴다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여기서. 바로 여기서… 눈을…… 감고…………
그리고 곧, 꽤 괜찮은 물건을 하나 발견한다. 인간들 사이를
거닐다가 발견한 작은 반지. 결혼의 예물로도 많이 쓰였던 기억을
품고 있던 안쓰러운 기억이 담긴 반지였다. 아하, 이 정도면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터. 마녀는 반지를 동그란 구슬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다음 마녀가 한 일은,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적당한 때와
적당한 상황, 적당한 장소를 찾아 헤매다, 어느 봄날 사경, 가파른
언덕에 집이 모여있는 동네로 향했다. 마녀는 골목을 거닐다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분명 이 씨앗은 나를 원망할 테다. 세상은
가혹하고, 운명은 아이를 압도하겠지. 그러나 어쩌겠니, 삶에는
이유가 없단다. 나는 바람 타고 온 한솜을 주워 생자(生者)의
세상으로 돌려보냈을 뿐이란다. 그러니 너의 삶을 나에게 원망하지 마렴. 그러나 마녀는 덧붙인다.
“하지만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예쁜 생(生)이여.”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하, 성님들. 아주 요때부터 한 성깔 하셨구만. 지금은 허물없이 야, 너, 이새끼 저새끼 한다지만, 그
때는...
"저기, 이봐요, 괜찮아요?"
"...야, 혹시 박선생님 지금 전화 되겠냐? 공중전화 부스 열렸나 좀 봐봐."
"쐬주랑 휴지 좀 가온나! 여 사람 피 오지게 나는데?"
그들이 다가오자, 때리던 이들은 도망갔다. 그제야 몸이
욱신거렸다. 고통스러웠고, 아팠다. 그제야 눈물이 나는 것 같았지만, 아마 정신을 잃었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저기요, 괜찮아요? 여기서 정신 잃으면 그대로 가는거야! 야! 일어나!!
순덕은 늦은 시간에도 깨 있었다. 거실 가운데, 보일러가 가장
뜨끈한 곳에서는 복실이가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순덕은 늦은
시간에 꽤 지쳐 있었으나, 복실이를 보고서는 드물게도 슬쩍
웃어버렸다.
사실, 순덕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웃는 건 단지 복실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주민행복주간이라, 처음에 공고문을 봤을 땐 그저 그런 단지 내 주민복지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순덕은 몹시 즐거웠다. 그 전에도 그리 슬프다거나 울적하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일도 없었으므로, 순덕은 이 상황이
상당히 생소했다.
평범하게 산책하던 아파트 단지는 어느새 이웃들이 오늘은
나와있나, 확인하는 길이 되었고, 대학생 때도 별 관심 없던 게임들은 어찌 또 재미있는지. 순덕은 또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승부욕
있는 사람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전에도 그랬던 것 같지만,
지금과 같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이 여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괜히 옛 생각이 납니다. 상념은 용푸를 먼 곳 아래로 끌어당기지만, 그럴 때마다 용푸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현실로 돌아옵니다. 시간이 갈수록 괜히 감상적이 되는 건지, 아니면 집중할만한 일거리가
없어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렇게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말카의 스위츠
공장이라면, 잠이 잘 오게 만들어주는 스위츠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달아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만, 다들 전력상태를
확인하러 갔을 테니 부탁할 직원도 없겠네요.
결국, 용푸는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합니다. 아마 이렇게 한다고 해도, 잠을 제대로 자지는 못할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온 몸에 전율을 전하는, 기적같은 화음이
홀 전체를 채웠다. 그 화음을 끝으로, 소리는 멎었다. 소리가 지나간 자리는 전보다 더 쓸쓸했고, 공허했고, 차가웠다. 젭텟은 이 감각을
알았다. 누군가 떠나갈 때 흔히 느껴지던 그 지긋지긋한 감각.
금방이라도 이성을 녹여버리고 무너뜨려, 통제 잃은 목소리가
난폭하게 터져나오기라도 할 것 같은 감각, 그래서… 결코 손대서는 안될 악역으로서의 선택을 다시 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불길한
감각. 거슬리던 고요함은 이제 해일이 되어, 젭텟을 깊은 심해의 골로 끌어당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존재해왔다고 해도, 물이 기름과
섞이지 않듯, 빛 하나 들지 않아 어둡고 흔히 닿기도 어려운 깊은
골짜기에서는 젭텟의 의식이 접근하는 것을 극렬하게 거부했다.
이런 것 하나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애초에 불량품으로
태어나기로 되어 있던 불쌍한 눈의 여왕, 이성의 얼음이여. 고장난
자기 자신을 언제나 떠나가기만 했던 이들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본질적인 금제로써 억눌려왔던 그대는 지금 다시
음악을 갈구했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 깊이 품고 있는 소중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제각각의 가치를 가집니다.
심지어 ‘가치 없다’고 판단된 것 역시도, 0의 가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전혀 가치 없습니다.
0조차도 없는, 무無의 가치. 가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단 한 가지.
대자연의 진리란 그런 법입니다.
우습게도 그 몰가치성에도 제 나름의 소중함을 투영한다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빛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그 거대한 이치는 작고 작은 저조차도 품어내니까요.
그 앞에서 제가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져,
한낱 인간이 정해놓은 기준을 아득히 초월하니까요.
그러니 괜찮습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동화는 흔히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옛적 어느날…”
이것은 그 ‘옛날 옛적’, 그보다 한참도 더 전의 이야기.
어쩌다가 이름도 없던 사냥꾼이 영웅을 꿈꾸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
그게 이유다. 완전히 낡아 어쩐지 너덜거리는 아픔을, 그 하얀 옷을
꺼내입은 건. 새하얗게, 하얗게. 하얗게 물든 옷은 아주 오래 전,
할머니께서 가끔 입으셨던 것만이 기억에 남았으나, 이제 '남은 이'는 아이였으므로, 아이의 의무였다. 하얀 옷, 새하얀 옷과 새하얀 수건. 수건을 휘― 저어 진심을 담아 넋을 기렸다. 죽은 이들이여, 먼저
길에 오른, 애틋한 사람들아. 북망산천으로 떠나야 할 구천의 모든
이들이여. 이 비루한 몸짓은 그대들을 위하여 바치는 살풀이이므로, 떠나라. 떠나서, 다시 돌아오라. 아니,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모든
한을 다 풀어내고, 흩어져 사라진다면. 파편이라도 열반에 닿는다면, 내게 남은 원이 없으리라.
아이야, 아이야. 고요히 오열하는 아이야. 달은 저물고 이제 새벽이 밝아오는구나.
그리고 개들은 눈치가 빠릅니다. 제 주인을 늘 관찰하고 바라보는,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복실이가 한 번, 컹! 큰 소리로 짖었던 것이겠죠. 그러면 순덕 할머니께서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기 쪽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복실이는 순덕할매의 큰
변화 없어 보이는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챕니다.
후회에 잠겨가는 그 특유의 흙빛은 걷히는 먹구름처럼 사라지고,
따스한 눈빛으로 복실이를 바라보시는 건 복실이로서는 가장
좋아하는 변화일 것입니다. 그래요, 바로 저렇게. 저 눈을 하고 손을 까딱거리며 저를 부르는데,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요?
하반기